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표트르 1세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러시아 제국]]의 초대 [[황제]]. [[스웨덴 제국]]과의 '''[[대북방전쟁]]'''에서 승리하고 '''급진적인 [[서구화]]를 밀어붙여 [[개혁]]을 감행한 지도자'''로, 마침내 '''전러시아의 [[임페라토르|황제]]'''를 칭하며 [[루스 차르국]]을 '''[[러시아 제국]]으로 탄생시켰다.''' [[정치]]적으로 러시아를 [[강국]]으로 만들었는데, [[대북방전쟁|스웨덴과의 전쟁 대승]] 등으로 [[국력]]을 과시했으며, [[아조프]]와 [[발트해]] 점령으로 [[발트함대]]를 창설하여 [[러시아 해군]]의 토대를 마련했다. [[서구화]]를 통해 변방의 러시아를 행정적, 상업적으로 발전시키는 큰 업적을 일궈냈다. 한마디로 '''러시아의 발전을 바닥부터 굳힌 군주'''라고 할 수 있다. 물론 높은 [[세금]]과 [[상트페테르부르크]] 건설 등의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[[백성]]들에게 반발을 샀고, [[귀족]]들에게 [[능력주의]] [[관료제]]를 강행해 많은 불만을 샀지만, 모두 '''[[피]]의 [[숙청]]'''으로 정리하고 많은 전쟁에서 성공적인 대승을 거두어, '''[[러시아]]는 [[유럽]]의 주요 정치 중심지로 [[역사책]]에 당당히 등장했다.''' [[신분]]보다 능력 중심의 인재 등용으로 [[17세기|17]] ~ [[18세기]] 군주로서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. 표트르 1세 때 [[치안]]을 담당하는 인물이 무려 선박 심부름꾼이었다. 그만큼 능력 중심적이었다. 귀족도 [[공무원]]으로 뽑았는데,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귀족이어도 얄짤없었다. 심지어 자신의 가족인 [[후계자]]마저도 능력 중심적이기를 바랬고, 새로운 승계법을 1722년에 제정할 정도의 '''[[계몽주의|계몽]] 군주'''였다. [[기술]]로써는 국가의 부족함을 쿨하게 인정해 [[서유럽]] 사절단을 파견해 본인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. 14관등 제도를 만들어 러시아에 근대적 관료 체계를 정립하였다. '''[[상트페테르부르크]]'''를 건설, '''수도'''로 삼아 해상 [[무역]]이 무려 몇 배로 [[뻥튀기#s-2]]되었다. 그의 밑에서 [[제조업]]이 크게 성장했으며, 표트르 1세는 [[키릴 문자]]를 서구화해 글자꼴을 재정립했고 전통 [[슬라브족]] 달력[* 슬라브력으로는 9월에 [[새해]]가 시작했다! 이러니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.]을 서양의 [[율리우스력]]으로 통일하였다. [[표트르]]는 [[베드로]]에서 따온 이름이므로 문화권에 따라 '피터 대제'(Peter the Great, [[영어]]권), '페터 대제'(Peter der Große, [[독일어]]권), '피에르 대제'(Pierre le Grande, [[프랑스어]]권), '페드루 대제'(Pedro o Grande, [[포르투갈어]]권)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. [[키(신체)|키]]가 엄청나게 컸는데, 지금 기준으로도 [[장신]]이다 못해 거인인 '''203cm'''였다. 당시에는 영양상태가 영 좋지 못해서 서양인이라고 해도 평균 키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으며, 인류 역사상 200cm 이상인 군주는 드물다. 게다가 얼굴도 [[미남|꽤 훤칠하게 잘생겼는데]] 이 둘이 맞물려서 [[미친 존재감|어딜 가도 눈에 띄었다.]] '''현재까지도 역대 러시아의 역대 지도자 중 최장신이다.'''[* 두 번째로 키가 큰 사람은 190cm의 [[알렉산드르 3세]], 세 번째는 189cm의 [[안나 이바노브나]]와 [[니콜라이 1세]], 네 번째는 187cm의 [[보리스 옐친]]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